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.
— |
크로니클:모래의_거장 [2017/06/29 11:17] (현재) |
||
---|---|---|---|
줄 1: | 줄 1: | ||
+ | {{page>wiki:틀#크로니클}} | ||
+ | |||
+ | ====== 모래의 거장 ====== | ||
+ | **Sand Giants** | ||
+ | ((초안 번역 출처 : http://www.eve-kor.com/chronicles/74236))((초안 번역자 : pissup)) | ||
+ | |||
+ | |||
+ | 민마타의 공무원으로 있는 원로 의원 두 명이 바닷가 쪽으로 걸어내려오고 있었다. | ||
+ | 협상 과정은 힘들었었고 철저한 비밀 유지를 약속하면서 잠깐만이라도 바람 좀 쐬고 싶다는 청을 간곡히 했다. | ||
+ | 마타(Matar)는 지금이 1년 중 따뜻하고 좋은 계절이어서 사람들은 틈만 나면 외출을 즐겼다. | ||
+ | 어쨌든 정부로서는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할 수 있었다. 적어도 사람들을 감시하기에는 좋았다. | ||
+ | |||
+ | 이 두 사람은 특히 엘브랜드 토두인(Elbrand Toduin)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. | ||
+ | 엘브랜드는 모래사장에서 표현력이나 기능성이 뛰어난 복잡한 구조의 거대한 모래 성을 만들곤 한다고 했다. | ||
+ | 적어도 이 의원들이 수습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들었던 내용으로는 그랬다. | ||
+ | 그렇게 해서 새드레드 스바르그(Sadrede Svarg)와 아두너 훔켈랫(Aduner Hulmkelat), 이 두 사람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이 엘브랜드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. | ||
+ | |||
+ | 이 정부 청사는 마타에서도 특히 바닷가에 가까이 인접해 있어서 잠깐만 걸어가도 닿을 수 있을 정도였다. | ||
+ | 마을의 상점가가 그쪽에 있었기 때문에 해안가를 따라 나란히 나있는 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끝 부분에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. 도로의 한쪽 편에 잘 정비된 인도를 따라 노점상들이 이곳저곳 자리를 잡고 있었다. 인도 너머는 모래사장, 그 너머는 바다였다. | ||
+ | |||
+ | 인도는 모래사장보다 높은 곳으로 나 있었다.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뭇가지가 나듯 콘크리트로 만든 부두가 모래사장을 갈라 수직으로 바다를 향해 쭉 뻗어있었다. 이 부두에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고리나 기타 장비들도 갖춰져 있었다. | ||
+ | |||
+ | 어쨌든 평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. 하지만 햇살이 비추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날씨여서 몇몇 사람들은 보도를 따라 한가로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. 그 중에는 최근 인기를 끄는 종족 특유의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. 아두너가 탐냈던 어떤 옷은 종족의 문신 모양을 흉내 내기도 했다. | ||
+ | |||
+ | 두 의원은 바다를 향해 쭉 뻗은 부두 한 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린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. | ||
+ | |||
+ | 사람들은 모래사장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곳 인도 부근에 몰려있었다. | ||
+ | 사람들은 모두 보호 난간에 손을 짚은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. | ||
+ | 새드레드는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아두너는 유연한 몸으로 군중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보호 난간 건너편을 볼 수 있었다. | ||
+ | |||
+ | 엄청나게 커다란 여러 모래 구조물 사이로 조그만 사람 모양의 엘브랜드가 저 멀리 아래에 서 있었다. | ||
+ | 아두너의 시선이 모래 구조물에 고정됐고, 아두너는 기가 죽었다. 저렇게 조그마한 사람이 저런 커다란 괴물체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.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. | ||
+ | |||
+ | 첫 번째 것은 그 크기가 무한대에 가깝다고 할만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인이었다. | ||
+ | 몸체는 유명한 민마타의 사람, 상징, 표어 같은 것을 모아 만든 집합체였다. 다리에는 [[/크로니클/쿠막]]이 있었고, 드루파(Drupar)가 사활을 건 일격을 가했을 때 같은 편에 섰던 두 사람의 얼굴이 무릎 관절에 새겨져 있었다. | ||
+ | 드루파의 얼굴은 거인의 몸체 한가운데에 있었다. | ||
+ | 마치 해수면이 드러나듯 다른 부분에 들어 있는 여러 얼굴도 알아볼 수 있었다. 거인의 팔은 종교 문신으로 장식되어 있었고, 아두너가 놀라웠던 것은 그 중 일부가 증오와 전쟁에 관한 표어를 담고 있었다는 점이며 상당수는 암호 같은 그림으로 조합되어 있었다. 하지만 적어도 아두너가 보기에 머리 위나 몸 한가운데에 메시지를 들고 있지는 않았다. 아두너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적으로 뒤죽박죽 흩뿌려진 분노였다. 급류에 휩싸여 경외심이라고는 남아나지 않을 비뚤어진 좌절감이었다. 아두너는 고개를 저었다. 과유불급이었다. 창조자가 그 거인을 반복해서 만드는 일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기에, 높은 파도에 그 거대한 구조물이 쓸려 내려간다는 사실을 그나마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. 좀 더 나은 것을 향한 탄생의 반복은 차가운 것을 그 무덤에 남겨둔다. | ||
+ | |||
+ | 두 번째 것은 아두너가 내키지 않아 하긴 했지만 꽤 매끄럽게 생긴 것이었다. 바다뱀이었다. | ||
+ | 육중한 머리가 모랫바닥에서 솟아올라 중력을 이겨냈고, 유연한 몸체는 반달 모양으로 가늘어지면서 자신은 물결이 굽이치듯 잘 헤엄치지 못함을 암시했다. 아두너는 뱀을 싫어했고 곧 이 작품도 싫어졌다. 바다뱀은 접착제 같은 것으로 반짝거렸다. 이렇게 커다란 게 아무 지지없이 홀로 서 있다는 건 불가능했다. 그 접착제는 바다뱀에 파충류처럼 보이게 할 것을 붙이는 용도로 쓰였다. | ||
+ | |||
+ | 이 작품의 뺨에는 작은 홈이 패여 있었다. 아마 엘브랜드가 접착제를 쓰기 전에 사다리로 건드리면서 생긴 것 같았다. | ||
+ | 바다뱀의 머리 부분은 또렷했다. 열린 주둥이 사이로 줄지어 선 이빨은 오래된 듯해져 있었고, 눈 아래에 비스듬히 보이는 핏줄이며 성난 듯한 눈썹은 물론이고, 정적인 모습과 활동적인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방법 등이 정교했다. 공격 준비 자세를 취한 것 같기도 하고 한가로이 바다를 오가는 모습 같기도 했다. 힘과 잠재력이 묻어나왔다. | ||
+ | |||
+ | 그러더니 화염이 일었다. 엘브랜드는 뱀의 콧구멍 안에 있는 화염 방사기를 작동시켰고 불꽃과 희뿌연 연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. | ||
+ | 이상하게도 아두너는 그 화염이 뱀을 조금씩 위협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. 그 화염은 바다뱀의 본성이나 위협성을 강조했고, 그렇게 함으로써 실물과 같은 날카로움을 나타내고 있었다. 하지만 이 모래 구조물이 점점 더 바다뱀 같아 보이면 보일수록 아두너는 점점 더 이것이 단지 모래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. 적어도 아두너한테는 이 바다뱀이 거북했다. 너무 실제적인 어떤 것, 특히 그 진정성이 분명히 허구에 불과한 그것은 실제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는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 세 번째 모래 작품을 쳐다볼 생각도 접어둔 채 돌아가려고 했었다. | ||
+ | 하지만 바로 그때 군중의 틈을 비집고 새드레드가 빠져나와 아두너 옆의 보호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. 새드레드가 작품을 바라봄과 동시에 아두너는 새드레드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. | ||
+ | |||
+ | "이건... 좀 안 좋네." 새드레드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는 고개를 끄덕였다. 언젠가는 이 일로 심각한 토론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, 곧 방향을 돌려 세 번째 작품으로 시선을 돌렸다. | ||
+ | |||
+ | 첫인상은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청명하다는 느낌이었다. 겉보기에 거의 한 덩어리에 가깝게 생긴 커다란 건축물로서 마치 석기시대의 유적지를 연상케 했다. 건물의 건축자재는 그 모양과 표면이 바윗돌을 닮았다. 각 자재는 마치 여러 작업자가 모여 만든 것처럼 그 모양이 제각각이었다. 작은 모래 삽 여러 개가 주변에 흩어진 모습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는 이 작품에 굉장히 호감이 갔지만, 그건 건물을 둘러보다가 밑동 부분에 있던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기 전까지였다. 민마타 소년의 모양을 한 모래 인형이 벽에 기댄 채 건물 앞쪽에 서 있었다. 소년의 바지는 발목 부근까지 내려왔으며, 그 얼굴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조차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, 거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. 그 소년의 앞에는 모래로 만든 아마르인의 머리가 놓여있었다. 꼭 아마르인을 머리만 남겨둔 채 바닥에 묻은 것 같았으며 소년의 가운데 부분에서는 한줄기 하나가 분수처럼 바람을 가르며 끊임없이 솟아나와 그 아마르인의 까칠까칠하고 벗겨진 머리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. 아두너는 이 모래 건물 주변에 커다란 물동이가 몇 개 놓인 것을 발견했다. 그리고 만약 이 건물을 뒤쪽에서 바라보았다면 플라스틱 파이프와 금이 간 물동이 따위로 설계된 멋진 수로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 작품이 위협적인 모습이어서 그토록 크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. 다만, 첫인상에 그런 징조가 보이는 허울 좋은 구경거리에 불과한 작품은 즉흥적인 오락거리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. | ||
+ | |||
+ | 물론 사람들은 모랫바닥에 펼쳐놓은 깔개에 동전을 몇 닢 던져대며 좋아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와 새드레드는 약속이나 한 듯 몸을 돌려 군중 틈을 빠져나와 부두 한가운데로 돌아왔다. | ||
+ | 아두너는 아무나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대를 찾지 못했다. 새드레드는 쥐죽은 듯 조용했지만 아두너는 경험상 그건 누군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을 만큼 폭발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가 무언가를 채 하기도 전에 새드레드는 근처에 있는 춤꾼을 향해 곧장 발길을 옮겼다. | ||
+ | 민마타에는 훈련받은 춤꾼이 펼치는 섬세하고도 상징적인 행위에서부터, 거칠고도 폭력적이기까지 한 민마타 전사의 춤까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전통이 있었다. 마찰력을 없앤 매트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고 있던 이 사람의 것은 루스테(Ruhste) 양식의 일종으로, 보통은 공연자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식으로 추는 과도하게 활동적인 옛 시대의 예술활동이었다. 이 춤은 아마르 점령기간 동안 전투 요원을 양산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지당했었으며, 현재에는 정부가 비록 정식 허가를 내거나 공식적으로 후원하기를 단호히 거부하고는 있지만 문화 스포츠로서 허용되어 있다. | ||
+ | |||
+ | 춤꾼은 새드레드가 가까이 다가가자 동작을 천천히 했지만 동작을 멈추지는 않았다. 매트 위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곡예를 펼치면서 몸의 균형을 흩트리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. 이미 멀리서부터 아두너는 매트에 장식된 무늬가 첫 번째 모래 상에 있던 종족의 문양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. 특히 전체적인 조합이 같은 주제를 나타낸다는 점이 그랬다. | ||
+ | |||
+ | 춤꾼은 인사말을 시작했으나 그 소리가 너무 작아 아두너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. 새드레드를 보고 상황을 따라잡긴 했지만 이미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. | ||
+ | |||
+ | "여기 이 공개 행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엉뚱한 사람들을 향한 화풀이일 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겁니다.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가 진정 나가야 할 방향과 전혀 상관도 없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." 세드래드가 춤꾼을 향해 소리쳤다. | ||
+ | |||
+ | 춤꾼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. "그럼, 당신은요?" | ||
+ | |||
+ | 새드레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. 춤꾼은 다시 춤을 계속 추며 그 나긋나긋한 몸을 놀려 무언가 내면의 리듬에 조화를 이루었다. | ||
+ | 그 춤은 점점 속도가 붙더니 춤꾼은 바닥에서 펄쩍 뛰어올라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손과 발을 공중으로 찌르고 있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는 만약 이 사람을 아무 증인이 없는 곳에서 만났더라면 이 공연은 지금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. 춤을 보려는 사람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. 루스테는 예술 활동이지만 미학적 관점의 폭력을 내포하고 있었다. 구경꾼은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이 행위를 보게 될 것이고, 좀 더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 춤에 깔린 그 근본은 사실상 미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. 폭력을 내포한 예술 활동은 자기 자신을 예술이라 표현하게 마련이다. 하지만, 아두너는 이 행위에 또 다른 것이 한 겹 더 둘러싸여 있음을 짐작했다. 만약 어떤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을 흉내 내며 겉으로는 예술적인 행동을 하는 따위의 시도를 했다면, 그 사람은 예술 행위로 폭력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현실에서도 폭력적인 습성을 지니기 쉬운 사람이기 마련이지만, 보통 구경꾼들은 단지 그 표면적인 모습만 볼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. 자신의 날카로움을 세상에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은 단지 그런 모습을 가장하고 있도록 알게 하여 본 모습을 숨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는가? | ||
+ | |||
+ |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. 새드레드는 여전히 그 말에 화가 잔뜩 나서 발길질을 했고 아두너는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. | ||
+ | |||
+ | 만약 크롬잇츠(ChromIts)를 갖고 노는 아이를 보지 못했더라면 계속 그랬을 것이다. | ||
+ | |||
+ | 크롬잇츠는 민마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었다. 그 장난감은 은색으로 된 스무 개의 작은 자석 구체가 주요 부품이었고, 접이식 연필깎이 모양으로 생긴 우주 정거장 모형과 자외선을 투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직립식 영사기 등의 부속물이 함께 들어 있었다. 그 자석 구체 한 쌍을 정거장 모형에 1분가량 놓아두면 곧 온도가 살짝 올라간다. 그렇게 된 후에, 그 둘을 동시에 잡고 살며시 양쪽으로 끌어당기면 구체의 표면에 있는 여러 개의 조그마한 구멍에서 비단결처럼 가느다란 실가닥이 밀려나와 둘 사이를 잇는다. 이 실가닥은 줄곧 팽팽한 장력을 유지하며 거의 무한대에 가깝도록 늘어날 수 있으며, 자외선 조명을 쬐게 되면 단단한 줄기처럼 굳어져 기다란 봉 형태의 물체로 변하게 된다. | ||
+ | |||
+ | 크롬잇츠로 만들 수 있는 구조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. | ||
+ |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. | ||
+ | 뜨거운 것은 기존의 구조물에 차례로 하나씩 덧붙여 실가닥으로 뼈대를 만들 수 있었다. 차가운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것으로, 구체 한 쌍으로 된 봉 형태를 여러 개 만든 뒤 구체가 띠는 자력의 성질을 이용해 서로 달라붙게 한다. 자력을 이용한다는 말은 그다지 큰 뼈대를 만든 것이 아니더라도 사방에서 같은 압력을 가해주어야 함을 뜻한다. 왜냐하면 자력으로 버티는 구체는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미끄러져 다른 구체들과 함께 스스로 전체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. | ||
+ | |||
+ | 장난감 크롬잇츠를 잔뜩 가진 어린이들을 만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. | ||
+ | 특히 가족 중에 기술자가 있다면 더 그러하며 그런 가족일수록 새로운 구조물이나 물건을 만드는 것이 일상적인 취미생활이다. | ||
+ | 차가운 접합 부분이 훨씬 더 구조적이고 어려운 쪽에 속하며 일종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라면, 뜨거운 쪽은 일반 물리 법칙이나 구조 기술로부터 자유로우며 좀 더 예술성과 독창성을 가미할 수 있었다. | ||
+ | |||
+ | 부둣가의 한 모퉁이에서 그 두 사람이 본 것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연상시키던 춤꾼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. 기껏해야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가 크롬잇츠 더미 위에 앉아 타이푼과 많이 닮은 무언가에 차가운 접합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. | ||
+ | |||
+ |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새드레드가 먼저 다가갔다. | ||
+ | |||
+ | "굉장한데! 이름이 뭐니?" 새드레드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"브릴드에요." 아이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"이거 다 혼자서 한 거니?" 새드레드가 물었다. | ||
+ | |||
+ | "네." | ||
+ | |||
+ | "한번 봐도 될까?" | ||
+ | |||
+ | 아이가 말없이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. | ||
+ | |||
+ | 새드레드가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말했다. "아주 잘 만들었구나.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거야. 종종 이렇게 우주선을 만드니?" | ||
+ | |||
+ | "우주선 아니에요." 브릴드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"정말?" 아두너가 불쑥 끼어들었다. "놀랐는 걸. 그럼 뭐지?" | ||
+ | |||
+ | 아이가 아두너를 올려다보더니 겉보기에는 일단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. "이건 거대선체의 뼈대에요." | ||
+ | |||
+ | 두 사람의 멍한 표정에 아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. "우리 아빠는 기술자에요. 부서진 커다란 우주선을 다룰 때 제일 힘든 건 우주선이 밀접하게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항상 얘기했어요." | ||
+ | |||
+ | "민첩한 거지." 새드레드가 말하자, 아두너가 쉿, 다그치며 조용히 시켰다. | ||
+ | |||
+ | "우리 아빠가 그러는데요, 그 폐선을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야 인양이 된데요. 그런데 그게 많이 망가져 있으면 붙어 있던 게 떨어져 나가서 인양할 방법이 없데요. 그래서 우리 아빠는 우주선을 감싸 안은 뼈대 같은 이 거대선체를 만드는 거에요. 아빠가 그러는데요, 그렇게 하면 움직일 때 그 폐선을 한데 모아줘서 부서지지 않는데요. 그래서 제가 아빠를 도와주려는 거에요. 그리고 아빠가 그러는데요, 그건 크롬잇츠 비슷한 걸로 만들 수 있데요. 왜냐면요, 아빠가 그러는데요, 재료를 최대한 적게 쓰고 꼭 필요한 곳에만 써는 게 그 비결이라고 그랬거든요, 그래야 그 뼈대가 서로 딸깍 들어맞는다고 그랬어요." | ||
+ | |||
+ | "차가운 접합으로 신형 무중력 수리용 뼈대를 만든 거로구나." 아두너가 놀라워하며 말했다. "이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린 거니? 몇 살이니?" | ||
+ | |||
+ | "2주일 걸렸어요. 여덟 살이요.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저 똑똑하데요." | ||
+ | |||
+ | "똑똑하고말고. 2주일 만에 뚝딱 이런 걸 만들어 낸 여덟 살난 아이는 본 적이 없는 걸. 당장 건축기사가 돼도 되겠어." | ||
+ | |||
+ | 아이가 씨익 웃으며 모형을 달라는 뜻으로 손을 뻗었다. | ||
+ | |||
+ | 새드레드가 웃으며 모형을 돌려주었다. 새드레드가 아두너에게 말했다. "이것 봐, 이런 거여야지. 전쟁도 없고, 위협도 없고, 깊은 생각이 깃든 평온한 일이잖아. 이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. 아직 희망은 있어." | ||
+ | |||
+ | 아두너가 고개를 끄덕였다. 무언가가 아두너의 마음에 걸렸지만 정확히 무엇이라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. "그 모래 조각가는?" 아두너가 물었다. | ||
+ | |||
+ | 새드레드가 바다를 향해 크게 팔을 휘둘렀다. "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릴 거야. 다른 걱정거리들도 다 마찬가지일 걸. 우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돼." | ||
+ | |||
+ | "브릴드야, 나도 그 모형을 한번 보고 싶은데, 부탁해도 될까?" 아두너가 말했다. 아이는 흔쾌히 보여주었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는 찬찬히 모형을 살펴보며 말했다. "망가뜨리지 않을게. 약속할게. 그런데... 여기 말이야. 여기 이 접합부분. 그리고 여기, 그리고 여기. 이건 어떻게 고정한 거니? 차가운 접합 부분이 이렇게 결합할 수 있는 줄은 몰랐거든." | ||
+ | |||
+ | 아이의 미소가 살며시 옅어졌다.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. | ||
+ | |||
+ | 아두너가 살며시 접합 부분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자 그 부분을 지지하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났다. 바람에 살살 나부끼며 끈적끈적하게 늘어진 섬세한 것이었다. | ||
+ | |||
+ | "이건 뜨거운 접합이구나. 접착제로 이 둘을 섞어놨구나." 아두너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"아, 별로 상관없지. 그래도 얼마나 훌륭해." 새드레드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. | ||
+ | |||
+ | "흠, 그래. 맞는 말이야." 아두너가 말했다. | ||
+ | |||
+ | 새드레드가 호감을 표시하듯 아이의 어깨를 약간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. "괜찮아. 여덟 살이야.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름길로 좀 갔다고 문제 될 건 없지." | ||
+ | |||
+ | "그러면 우리는?" 아두너가 말했다. 하지만 아두너도 그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. "괜찮아. 여기 있다, 브릴드야. 정말 멋진 걸 만들었구나." 아두너가 모형을 아이에게 돌려주자 아이는 곧바로 주저앉아 다시 모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. 그 모형은 분명히 아이들 장난감이었음을 아두너도 알고 있었지만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다. 그리고 곧 그 실망감에 좌절감을 맛보았다. 자신들이 숨겨왔던 것과 환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. | ||
+ | |||
+ | "돌아가자." 아두너가 말했다. 새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. 그리고 두 사람은 정부 청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가기 시작했다. 협상에 복귀할 시각이었다. 카린 미듈러(Karin Midular)나 극비에 찾아온 사절단이나 협상 지연에 관대할 리는 없었다. | ||
+ | |||
+ | 매트 위에서는 춤꾼이 두 사람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. | ||
+ | |||